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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기후변화 맞설 무기는 땅 속에 있다

(사)한국에너지4.0산업협회 2021.02.07 01:36 조회 58
[탄소 후 미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날씨 때문에 작황이 너무 안 좋아서..."

언제부턴가 이런 말을 참 많이 듣고 산다. 며칠 전 경기도 농민들을 만날 때였다. 농민들이 '쌀값을 보장하라'는 현수막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작년에 쌀값이 얼마나 좋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집밥만 먹는데 쌀값을 얼마나 더 받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더니 농민들은 '도시민들은 저렇게 생각하나 보다'며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따뜻한 겨울과 긴 장마 이후 수확량이 확 줄었다는 것이다. 특히 일찍 심은 조생종 벼는 30~40% 줄어든 폭망 수준으로 쌀값이 올라도 도지(소작료)에 농약값에 이것저것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거다. 쌀의 고장 경기도에서 30년 넘게 농사 지어온 선수들의 말이었다. 아침에 눈 뜨면 들녘에 나가 불어오는 바람결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해온 그들은 몇 번이나 내게 말했다. 이런 날씨 처음 겪는다고.

이제 농산물 가격보장만으로는 식량공급을 장담하기 힘든 세상이 왔다. 그동안 공업발전과 한강의 기적을 위해 묵묵히 희생해온 농업은 이제 기후의 역습 앞에 아예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걱정을 할 무렵 '탄소 농부'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토양을 살려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이상한 나라의 농부들 말이다.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서 생긴 일

"(2017년) 포도 수확이 시작되는 9월초 기온이 화씨 110도(섭씨 43도)를 넘어섰다. 이상고온은 나파 밸리에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2019.10.31)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 그러나 천하의 나파 밸리도 기후변화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2015년에는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1~2월 날씨가 포도의 이른 성장을 촉진시켰다. 그런데 그해 5월 한파가 찾아와 수확량이 40~50% 줄었다. 2017년 10월에는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가 일으킨 산불이 덮쳐 건물을 태우고 포도농원을 검은 연기로 뒤덮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나쁜 품질의 포도가 수확되기도 했다.

산불은 이후 5년간 캘리포니아 전 지역을 가뭄에 시달리게 했다. 산불로부터 시설을 보호하려는 전기회사가 전원공급을 끊는 바람에 와인 농원들은 며칠간 정전상태에서 살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개인주의로 악명높은 나파 밸리의 와인 생산자들도 기후변화 앞에 힘을 합쳐 맞서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생산자 700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기후변화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이 중에는 일찌감치 토양을 살리는 농법을 실천해 캘리포니아주의 기후대응 보조금을 받고 있는 와이너리도 있다. 매티아슨 부부가 운영하는 농장이 대표적이다.

토양 살려 기후대응보조금 받는 와인 농장

질과 스티브 (매티아슨) 부부는 지난 2003년부터 나파 밸리에서 와인을 만들어왔다. 지속가능한 농업과 로컬푸드 운동을 실천하려고 와이너리를 만들었기에 농장 이름도 기업형태의 브랜드가 아닌 '매티아슨 가족 포도농장'이다. '최고의 비료는 농부의 발걸음'이라는 신념을 가진 이들 부부는 18년째 친환경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어 헌신적인 환경운동가로 불려왔다.

그런데 요즘에는 '캘리포니아의 기후 전사'로 통하고 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주가 기후변화 대응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한 기금을 통해 3만1445 달러(3400여만 원)를 지원받는다. 아내 질 클라인씨는 지원금을 받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저의 삶은 '기후'가 좌우합니다. 농민으로서 우리는 기후변화 방어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후변화 영향을 줄여나갈 모든 것을 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 부부가 찾아낸 기후대응 기술은 무엇일까? 알고 봤더니 첨단기술도 신기술도 아니었다. 그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일이다.

퇴비를 많이 준다. 퇴비는 와인생산 공정에서 나오는 유기성 폐기물을 재활용해 직접 만들어 쓰고 있다. 풀을 많이 심는다. 포도나무 밑에 여러해살이 녹비작물을 심어놓아 수확이 끝난 겨울철에도 파란 풀들이 농장 바닥을 뒤덮고 있다. 곳곳에 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야생동물과 곤충과 새들의 서식처를 제공했다.

밭을 가는 경운작업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 결과 뿌리를 깊이 내린 풀들이 농장을 뒤덮고 있다. 포도를 묶을 때 쓰는 끈은 플라스틱 대신 자연분해되는 식물성을 쓰고, 가지치기한 포도덩굴은 태우지 않고 잘라서 다시 흙으로 되돌려 보낸다.

쉽지 않은 실천이지만, 방식 자체는 우리나라 친환경 농민들도 많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농사방식이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길이라고?

"탄소를 토양 속에 가둬놓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납니다. 토양이 물을 보유하는 용량이 늘어나면 적은 물로도 포도나무에 물을 댈 수 있죠." (질 클라인씨)
 
▲  와인생산자 질 클라인 매티아슨씨
ⓒ 유튜브 갈무리
 
질 클라인씨는 '탄소'를 언급한다. 건강한 토양이 온실가스의 원인물질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식품농업부는 건강한 토양 만들기에 관해 이런 홍보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건강한 토양 프로그램을 통한 온실가스 저감효과는 매년 도로 위에 있는 자동차 8423대를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궁금했다. 어떤 원리로 우리 발 밑의 토양이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다는 건지.

기후변화 방어의 전위부대, 농민

1990년대 초반, 라탄 랄이라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토양학자가 두 명의 미 농무부 동료들과 함께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토양'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저감시킬 수 있다는 최초의 서면 보고였다.

원리는 너무 간단했다. 식물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한 뒤 남은 탄소를 토양에 저장하는데, 토양은 마치 스펀지처럼 대기 중에 떠 있는 이산화탄소를 계속 제거할 수 있으며, 토양 속에 탄소가 많아지면 작물재배에 좋은 비옥한 땅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토양 속에 탄소를 가둬놓을 수 있다는 '토양의 탄소 격리(sequestration)' 개념이다.

"우리의 농사방식이 (탄소 잡는) 토양의 능력을 도울 수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민이 밭을 갈 때 쟁기질(경운)을 심하게 하면 토양 속에 저장된 탄소들이 빠져나와 대기 중 이산화탄소로 배출됩니다. 반대로 쟁기질을 최소화할수록 탄소배출을 막는 거죠. 수확이 끝난 밭에 토양을 덮는 피복작물을 심으면 비나 바람에 토양이 침식되는 걸 막고, 탄소가 배출되는 것도 막습니다."(라탄 랄 교수)
 
▲  라탄 랄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
ⓒ 유튜브 갈무리
 
라탄 랄 교수는 '농업분야 최다인용 상위 1% 연구자'로 3년 연속 이름을 올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중 한 사람이다. 오하이오 주립대학 '탄소관리및격리센터'를 이끌어온 그는 지난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을 통해 '황폐화된 경작지 토양에 1톤 분량의 토양탄소가 늘어날 경우 밀 수확량이 20~40kg/ha 증가되는 등 작물수확도 늘 뿐 아니라 토양의 탄소격리를 통해 화석연료를 통해 매년 배출되는 탄소의 10~15%를 토양 속에 가둘 수 있다'고 밝혔다. 토양을 살리면 식량위기뿐 아니라 기후위기에도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기후변화에 대해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농업은 우리가 손을 뻗으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위치에 매달린 열매(해결책)입니다. 답은 우리 발밑에 있습니다."(라탄 랄 교수)

사실 우리 발밑의 토양은 거대한 탄소 저장소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 토양 속에 약 2500기가 톤의 탄소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공기 중에 떠 있는 탄소량의 3배 이상이고 모든 살아 있는 동식물 몸을 이루는 탄소량의 4배가 넘는다.

문제는 산업혁명 이후 150년간 토양을 빠져나와 대기로 배출된 탄소량이 산업혁명 전 7800년간 토양을 자연적으로 빠져나온 탄소량의 무려 42.5%에 달한다는 점이다. 중장비를 동원해 쉴 새 없이 농토를 뒤집는 대규모 기업농들과 토양침식, 사막화 등 잘못된 토지이용이 수천 년 간 땅속 깊이 묻혀 있던 탄소들을 아주 빠른 속도로 공기 중으로 배출시켜 온실가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만일 농업의 토양관리 방식이 바뀐다면, 탄소배출을 줄이고 작물이 잘 자라게 해 이산화탄소를 잡아 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지난 2015년 파리 기후 협약에서는 프랑스 주도로 전 세계 토양의 탄소저장능력을 늘리기 위한 "4/1000" 국제이니셔티브가 출범했다. 토양 내 탄소축적량을 매년 4/1000, 즉 0.4%씩만 늘려도 이산화탄소 증가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거다.

"농업은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인간의 활동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해 기후변화를 가속화하지만, 매년 이산화탄소의 30%는 광합성을 통해 식물이 흡수하고, 식물이 죽고 분해되면 박테리아, 곰팡이 또는 지렁이와 같은 토양의 살아 있는 유기체가 그들을 탄소가 풍부한 유기물로 변형시킵니다. 지구 토양은 대기보다 2~3배 많은 탄소를 함유하고 있는데, 이 탄소 수준이 매년 0.4% 증가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크게 줄어듭니다."("4 PER 1000" 국제 이니셔티브 누리집에 나와 있는 출범취지 중)
 
▲  "4 PER 1000" 국제 이니셔티브의 홍보포스터
ⓒ 4 PER 1000
 
탄소를 많이 보유한 토양은 기후위기 대응에만 도움되는 게 아니다. 캘리포니아 농민들이 겪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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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토양 살리는 '탄소 농사' 지원할 때

캘리포니아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특히 탄소배출권 거래시장 수익금을 활용해 적극적인 토양살리기에 나선 점은 중앙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토양학자인 최우정 전남대 교수(기후변화대응농생명연구소장)는 우리나라 토양은 유기물이 부족해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며, 농정 당국의 과감한 정책 전환이 뒷받침된다면 우리 농업이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는데 매우 효과적인 무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논을 예로 들면, 쌀 수확이 끝난 뒤 논에 볏짚이 남아 있잖아요. 이걸 소 사료로 주면 탄소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지만 다시 토양으로 되돌리면 토양 유기물이 돼서 식물이 잘 자라고 식물은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잡아 올 수 있죠. 이게 '탄소 격리' 개념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토양은 유기물 함량이 낮아서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농업 분야의 기후변화 대응은 재해보상 등 사실상 피해 보상 중심으로 수동적인 면이 있는데, 농민들이 토양에 탄소를 저장해 소득을 얻는 '탄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조금 더 과감한 정책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최우정 교수)

우리 농사속담 중에 '중농은 작물을 가꾸고 상농은 흙을 가꾼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날씨나 기술이 좋아도 땅심을 높이지 않고는 풍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날씨마저 기대할 수 없어진 지금, 토양을 잘 가꿔 탄소 농사를 짓는 '상농'들이 식량 위기를 극복하고 지구를 구할 것이다. 농정당국의 과감한 '토양 살리기' 정책을 기대해본다.

============== 이하 생략(자세한 사항 : 출처 확인)============== 

* 출처 : 오마이뉴스